이한치한(以寒治寒) 추위로 추위를 이긴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협곡 얼음트레킹 임윤식 기자l승인2018.02.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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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뉴스=임윤식 기자)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다. 겨울 일기예보를 보면 통상 양평, 철원, 대관령 등이 가장 추운 지역으로 매스컴에 자주 이름이 올라오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웠던 때는 1981년 1월 5일 양평의 영하 32.6도였다고 한다. 그 다음은 철원 2001년 1월 16일 영하 29.2도, 대관령 1974년 1월 24일 영하 28.9도 등이다. 올해 들어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근년 중에는 가장 추운 해인 것 같다. 대관령은 바닷바람이 넘어오는 산 능선이라 그렇다 쳐도 양평이나 철원이 유독 추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분석자료들을 보면 우선 지형적으로 분지형이고 주위에 산들로 둘러 쌓여있어 겨울철 북쪽의 시베리아 찬 공기가 분지로 스며들면 산에 가로막혀 빠져나갈 길이 없어서인 것 같다.

지난 1월 중순 필자는 철원 한탄강 얼음 계곡을 걷는 트레킹에 나섰다. 이전 며칠간 철원은 영하 23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혹한으로 한탄강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모 산악회에서 ‘한탄강 협곡 얼음트레킹’ 공지가 떠서 바로 신청했다. 코스는 직탕폭포-태봉대교-송대소-마당바위-승일교-고석정-순담계곡까지 약 8km 거리. 특히 한탄강 얼음 트레킹코스는 거의 전 구간이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되어 있어 협곡의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철원은 두루미, 독수리 등 철새 촬영 때문에 종종 가는 곳이라 그곳 지형이나 명소 등을 조금은 아는 편이다. 

본지 ‘월간오늘의 한국’ 2015년 2월 및 3월호에 철원 관광명소 및 철새도래지에 관해 2회에 걸쳐 소개한 적도 있다. 철원은 서울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 방한복으로 중무장하고 ‘이한치한(以寒治寒)’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트레킹 출발지인 철원 직탕폭포에 도착, 먼저 아이젠을 착용하고 꽁꽁 얼은 폭포를 내려다본다. 직탕폭포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겨울 설경으로 보는 풍경은 조금 색다르다. 극히 일부분만 제외하고 폭포물은 물론 상하단 물길도 꽁꽁 얼어붙었다. 높이 약 3m, 너비 80m에 이르는 직탕폭포는 국내의 일반적인 폭포들과는 달리 넓은 폭포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폭포는 한탄강의 침식작용을 받은 현무암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면서 계단모양을 이룬 용암층이다. 이처럼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폭포의 위치가 조금씩 강 상류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두부침식(頭部蝕, headward erosion)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두부침식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폭포 중 하나가 직탕폭포인데, 세계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직탕폭포는 규모는 작지만‘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폭포하단은 물살이 센 구간이라 하단 쪽은 아직 덜 얼은 곳이 적지 않다. 직탕폭포에서 약 500m 거리의 태봉대교까지는 식당 우측 둘레길을 따라가야 한다. 태봉대교는 상사리와 장흥리를 연결한 다리로, 다리 위에 번지점프 시설이 있어 하절기에는 번지점프를 즐기는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치형 다리 위에는 타워크레인 모양의 시설과 함께 ‘Bungee Jump(번지 점프)’라고 쓰여진 안내판도 눈에 띈다. 태봉대교를 지나 강변 둘레길을 5분 정도 더 가면 수변안전초소와 정자가 있는 공터에 이른다. 본격적인 얼음트레킹은 이곳에서부터다.

강변에는 ‘동지섣달 꽃본 듯이-철원 한탄강 얼음트레킹’이라는 컬러풀한 깃발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라고 쓰여진 리본도 걸려 있다. 매년 1월 중에는 ‘설원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도 열린다. 동지섣달에 꽃을 본 듯 신기하고 아름다운 축제라는 뜻에서 ‘동지섣달 꽃본 듯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았다고 한다. 2018년에는 1월 21~28일까지 열렸다. 이 기간 중이 아니더라도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 강이 두껍게 얼었을 경우에는 개별 트레킹도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에는 축제기간 전에 미리 다녀왔다. 강 대부분은 얼어붙어 있다. 부분적으로 물살이 있어 얼음이 얕은 구간은 부표다리를 설치하여 안전을 도모했다. 수변안전초소에서 조금 걸으면 좌측코너로 도는 강 양측이 거대한 절벽으로 깎아지른 구간에 이른다. ‘송대소’라는 곳이다. 

약간 붉은 색을 띤 수직절벽을 자세히 보면 바위가 마치 갑옷의 깃처럼 일정한 모양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고, 그 사이사이로 돌단풍들이 붙어 있다. 절벽 위에는 계속 이어진 펜스형 난간이 보인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절벽 아래 강 위를 걸을 수 없으므로 자전거 및 도보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웅장한 협곡 경관과 절벽의 신기한 패턴 모양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는 데 여자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을 철원군 지질공원 문화해설사라고 소개한다. 목에는 문화해설사 신분증을 걸고 있다. 궁금한 게 있으시냐고 묻는다. 당연히 물어볼 것이 많다. 정말 반갑다. 유정희라는 분이다. 유정희 해설사는 이곳 주상절리 지형에 관해 자세히 설명함은 물론 곳곳에 숨겨진 전설이나 이야기꺼리도 소개한다.

송대소는 100km가 넘는 한탄강의 상류지점에 위치한 명소로, 12~50만 년 전 화산으로 인한 용암이 흘러서 만들어진 현무암 절벽이다. 높이가 20~30m에 이른다. 좌우가 절벽인 협곡형태를 보이고 있어 ‘한국의 그랜드 캐넌’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부채꼴 모양의 패턴도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는 주상절리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는 꽃처럼 퍼진 모양이라 ‘방사성 또는 화상절리’라고도 부른다. 유 해설사는 우리는 지금 ‘지구 뱃속 여행’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웃는다. 지구 속에 숨겨진 신비로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절벽의 컬러가 붉은 색을 띠는 건 바위에 철분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절벽 중간에 물이 흘러내리다가 얼어붙은 모양도 보인다. 바위에 구멍이 뚫려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내린 것 같다. 그바위구멍을 통해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용‘ 굴’이라 부른다고 한다. ‘송대소’의 전설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엣날 송도에 사는 송씨 성의 포수 3형제가 이곳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내려와 이무기를 잡으러 물속에 들어갔는데 3형제 모두 다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옛날 이 강의 깊이는 비단실 한 타래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단실 한 타래는 1500m라 하니 그 깊이를 과장한 것이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바위절벽 곳곳에는 돌단풍들이 자라고 있다. 흙도 물도 없는 바위틈에서 어떻게 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오랜 세월 동안 겨울에는 죽은 듯이 잠자고 있다가 봄에는 다시 새싹을 피우
는 자연의 신비. 유 해설사는 학자들의 연구결과 돌단풍이 바위틈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특정한 단백질을 생산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또, 이들 적벽은 비를 맞으면 색상이 신비롭고 오묘하게 변한다고도 얘기해 준다. 트레킹 도중 곳곳에 물살이 센 곳도 만난다. 얼음 속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다. 한탄강(漢灘江) 은 순우리말로 ‘큰 여울’이다. ‘여울(灘)’은 물방울이 튈 정도는 아니나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물 흐름이 빠른 곳을 말한다. 반면 물 흐름이 잠시 멈추는 곳을 ‘연(淵)’이라 하며, 그러한 곳 중에서 깊은 곳을 ‘소(沼)’라 한다.

직탕(直湯, 直灘), 송대소 등은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철원군을 남북으로 가르면서 흐르는 한탄강은 아름다운 구간별 옛 이름을 가지고 있다.비무장지대인 최상류는 ‘전천(箭川, 살내)’으로 물 흐름이 화살과 같이 빠른 데서 붙여졌다. 당구미(정자연)에서 화적연(볏가리소)까지는 ‘체천( 川)’이라 하는데 섬돌과 같은 기암절벽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정희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트레킹은 역시 이렇게 여유있고 깊이있게 해야 제맛이다. 다시 얼음 위를 걷는다. 좌측에 넓은 화강암 평바위를 만난다. 이게 마당바위인가 했는데 정식 ‘마당바위’는 조금 더 가야 한다고 한다. 평바위 좌측에는 거대한 기암 아래 조그만 바위 하나가 받치고 있다. 거대한 바위는 화강암, 작은 받침바위는 현무암이다. 사람이 일부러 끼워놓은 듯한 작은 바위 하나. 어떻게 조그만 바위가 저 거대한 바위 밑으로 들어갔을까? 자연의 오묘함에 할 말을 잃는다.

드디어 마당바위다. 약 200평 정도의 평판이다. 전에는 철원출신의 모 사진작가가 이곳에서 누드촬영을 자주 했다고 전해준다. 강 건너 능선에는 예쁜 정자도 눈에 들어온다. 마당바위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시 한수 나올 만하다. 정자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그 경관 역시 환상적일 것 같다. 절벽이 높아 위에서 아래 강물을 보려면 허리를 많이 구부려야 될 것 같다. 유 해설사는 “한탄강은 아주 겸손하게 가까이 가서 90도로 허리를 구부려야만 강물을 볼 수가 있다. 겸손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한탄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마당바위 주변 강 중심에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기암 사이사이로 물길이 이어진다. 강원 영월 주천강변의 ‘요선암’처럼 ‘돌개구멍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돌개구멍(Pot Hole)이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의미로 오랜 시간 강을 따라 흘러내린 자갈과 모래가 화강암에 구멍을 내고, 오목해진 부분에 물의 소용돌이가 휘돌아가면서 만들어낸 신비로운 바위 들을 말한다. 강 가운데 바위섬도 보이고, 강 좌우측 곳곳에는 양수장도 눈에 들어온다. 한탄강물을 끌어올려 철원평야 농업용수 보조 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양수장 벽은 두루미 등 예쁜 벽화를 그려 넣어 주위경관과 어울리도록 배려했다. 얼음 위를 걷기도 하고 강변 갈대숲길을 걷기도 한다. 누군가 큰 바위 위에 작은 돌탑을 쌓은 모양도 앙증스럽다. 트레커들의 안전을 비는 마음이다. 강변 숲에는 버드나무들이 하늘거리고 상수리나무숲도 여기저기 보인다. 한탄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와도 아름답다.

멀리 거대한 고드름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승일교 앞에 위치한 저곳이 ‘한탄강 협곡 얼음 트레킹 축제’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역고드름도 여러개 만들어놓고 고드름터널도 있다. 특히 넓은 수직절벽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군은 실로 웅장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인공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얼은 것이다. 날씨가 춥지 않으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걸작품이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합작품이다. 고드름벽 옆은 승일교 다리이다. 승일교(承日橋)는 다리 한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 다리모양이 다르다. 유심히 보면 문혜리 방향(동쪽) 다리의 교각 간격이 장흥리 방향(서쪽) 다리의 교각 간격보다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각각 만든 사람들이 다르고, 건설된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승일교의 복잡한 역사적 사연이 얽혀 있다. 승일교 공사는 1948년 8월 인공치하에서 남침 교두보 확보를 위해 시작되었다. 다리공사에는 철원과 김화지역 주민들이 노력 공작대란 명목 하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5일간 교대로 총동원되었다. 하지만 절반도 놓지 못한 상태에서 6·25전쟁이 발발해 흉물로 전락했다. 남북이 중부전선에서 치열하게 전투할 무렵이던 1952년 4월 미군 공병대가 주관하는 승일교 공사에는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철원 땅에 남아있던 장정들로 구성된 KSC노무대원들이 투입되었다. 남북 합작의 아이러니한 공사과정을 알고 있는 철원주민들은 그때부터 남한 이승만대통령의 ‘承’자와 북한 김일성의 ‘日’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후일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6·25전쟁 중에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산화한 박승일 대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 이해와는 달리 이 다리를 ‘昇日橋’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한글이름은 똑같다.

승일교를 지나도 계속 기암괴석이 이어진다. 먼저 병풍 모양의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옆에서 보면 병풍바위인데 뒤에서 보면 탱크 모양이다. 유속이 빨라 물이 얼지 않은 곳은 강바닥이 빤히 보인다. 넓은 화강암 바닥이다. 현무암들은 깨진 형태로 작은 바위가 널려 있는 반면, 화강암은 넓게 하나로 평판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화강암 바닥을 쓸며 내려오는 물소리가 귀를 시원하게 한다. 그야말로 ‘큰 여울(漢灘)’이다. 강 바깥쪽의 언 부분과 얼지 않은 부분이 곡선을 이뤄 아름다운 선을 이뤄내고 있다. 서서히 날머리가 가까워온다. 섶다리를 건너면 바로 고석정이다. 섶다리 우측 절벽 위에는 게르마늄온천이 있는 한탄리버스파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호텔 측에서는 일본 벳부온천 수질을 능가하는 게르마늄 성분이 풍부한 국내 유일의 화산온천수라고 자랑한다.

이제 드디어 트레킹 종착지인 고석정이다. 강 양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쪽 강가에 10m 정도의 큰 바위인 ‘고석바위’가 솟아 있고 절벽의 중간에 3칸 정도의 자연 석굴이 있다. 일찍이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유람하였다는 명승지로, 조선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과도 관련된 곳으로 유명하다. 임꺽정은 이곳의 자연 석굴에 은거하며 활동하였다고 전해 온다. 강 건너에는 그가 쌓았다는 석성(石城)이 남아 있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고석정’이라 불렀다. 계곡 우측에는 움푹 파인 선녀바위도 있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2km, 약 40분 쯤 가면 순담계곡이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는 얼음이 녹거나 얕아질 경우에 대비, 부교가 이어져 있다. 고석정 주변 대교천 현무암 협곡 주상절리는 2004년 2월 23일 천연기념물 제436호로 지정되었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유정희 문화해설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임윤식 기자  newskm2015@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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